응답하라 20세기(ft.pcs폰과 삐삐)
삐삐의 추억
90년대 중반 핸드폰이 없던 학창 시절에 일명 삐삐라고 불리는 무선호출기가 있었다.
그 당시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었고
상당히 유행했던 무선 통신수단이었다.
수신만 되고 발신은 되지 않는 숫자로 표시되는 다마고찌 사이즈의 발신번호 알림서비스.
알림이 울리며고 발신번호를 확인하면 상대에게 전화를 해주어야 했다.
공중전화를 찾아다니는데 동전 탓에 바지가 흘러내린다.
발신인이 설레는 상대라면 동전을 많이 챙겨가야 했다.
당시 2~3천 원 하던 선불형 공중전화카드가 있었는데
당시의 자장면 한 그릇 정도의 값에 해당했다.
집에 굴러다니거나 가족 누군가의 돼지저금통의 배를 따서 동전을 충당해서 사용하곤 했었다.
공중전화는 통화 대기자들이 맛집 줄 서듯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절 커피숖에 가면 테이블마다 수신전용 전화기가 한 대씩 놓여 있었다.
커피숖 구석에 마련된 공중전화로 친구A의 호출기에
커피숖의 전화번호를 남기면
잠시 후 커피숖으로 "0000(친구A의 삐삐 뒷번호) 호출한 사람 찾습니다" 하고
친구A가 자신의 호출기에 찍힌 커피숖번호로 전화를 한다.
그러면 카운터에서 "0000 호출하신 분 9번 눌러주세요*2 " 하고 마이크로 안내를 해준다.
이때 내가 호출한 친구A번호가 맞다면 커피숖 각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고
9번을 누르면 친구와 전화연결이 되었다.
한참을 전화를 붙들고 수다를 떨면 옆에 친구들이 서로 자기도 전화올 때 있다고 빨리 끊으라고 난리를 치곤 했었다.
어느 정도 사용하다 보니 공중전화를 찾는 번거로움에 '읽씹'은 늘어났다.
음성메시지가 와야 무슨 말을 남겼을까 궁금해서 공중전화를 다시 찾아 달려가곤 했었다.
딱히 급하게 주고 받을 필요도 없는 그 나이때의 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쌓여갔다.
학생이었지만 휴대전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당시에도 벽돌폰이라 불리던 셀룰러폰(개인용이동무선전화기)이 있었다.
당시의 중형차 한 대 값과 맞먹는 사악한 가격 탓에 사업가나 부유한 일부 사람들이나 쓸 수 있는 굉장한 사치품이었다. 사실 누가 쓰는 걸 실제로 본 적도 없다.
그러다 그맘때쯤 셀룰러폰보다 저렴한 가격의 발신전용 휴대폰 시티폰이 출시되었는데
발신만 가능하네? 진짜 발신만 된다고? 대체 왜? 휴대폰 만들다 수신기능 넣는 걸 깜빡했나?
휴대폰의 모양을 하고선 발신만 가능하다고?
이건 뭐, 전진은 가능하지만 후진은 안 되는 자동차가 새로 나온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on 스위치는 있는데 off는 없는 가전제품 같다고나 할까.
만들다 잠들어서 깜빡한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은 뭘까.
또 공중전화 근처에서만 수신율이 좋았기에 시티폰이 있다해도 공중전화를 찾아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공중전화의 긴 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발신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만이 시티폰의 최대장점이었던 것이다.
비록 IT라는 말도 쓰지 않고 인터넷 웹브라우저도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발신은 되고 수신은 되지 않는 비논리를 장착한 신제품의 등장은 내게 아이러니만 잔뜩 남겼었다.
뭐 그럴만한 이유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니까.
덕분에 주변에서 시티폰 쓰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주변만 그랬을지도.
하지만 Money is 뭔들. 나름 오래 잘 사용했던 사람들도 있긴 했다. 취향 is 뭔들.
PCS폰의 추억
그러다 90년대 후반쯤 드디어 양방향통신이 가능한 저렴한 가격대의 psc폰이 등장했는데
당시 직장인이라면 충분히 구매 가능한 가격대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내 인생 첫 휴대폰인 걸리면 걸리는 걸리버도 그때 처음 등장했었고 바로 구매했었다.
당시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기숙사생활을 하던 탓에 긴 할 말은 편지로 주고받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삐삐도 사용했었다.
수신통화는 기숙사를 한번 거쳐야 가능했기에 번거로웠다.
수신기능이 절실히 필요하던 나에게 pcs폰은 구세주였고
나를 내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세상과 연결해 주는 무선 끈? 그 이상의 편리함이었다.
정말 내 손 안의 새로운 세상이었다.
몇십년도 안살아본 인생에 있어 꽤 한 짜릿함으로 기억된다.
5G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다시 쓰라고 하면 때려죽여도 못쓸 그런 수신율의 pcs폰이지만 그래도 꽤 오래오래 만족감을 느끼며 사용했던 제품이었다.
그런데 걸리버라고 걸면 다 걸리냐. 천만의 말씀. 당시 기숙사가 시외 외곽에 있었기에 대도시에 비해 수신율이 많이 떨어지던 곳이었다.
일단 전화를 하려면 pcs폰 화면의 안테나 수신표시가 풀(full)로 차는 곳을 찾아야 했다.
휴대폰에서 돌출형 안테나를 길게 쭉~ 뽑아 휴대전화를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안테나 수신호가 뜨는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수신호세기가 센 곳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멈춰 선다.
내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움직이면 수신호가 약해져 목소리가 끊기거나 전화가 끊겨 버리기 때문.
전화를 하는 동안은 휴대폰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목적이 다분한 자세로 통화를 했다.
외출 시에는 그 커다란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불룩하게 꽂은 채로 나의 얼리어답터적인 면모를 한껏 뽐을 내고 다녔었다ㅋㅋ.
지금의 스마트폰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통화 외에 별다른 기능조차 없는 폰이었다.
잘 안 터져 답답하기도 했고 주변에 pcs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전화할 곳 조차 많이 없던 때이긴 했지만 길거리든 차에서든 밤이든 낮이든 전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다 했고 나에겐 지금의 스마트폰 이상의 가치였다.
pcs폰은 매년 발전해서 흑백문자메시지에서 컬러풀한 메시지로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벨소리를 내 취향대로 바꿀 수 있게 되었고 카메라가 탑재되어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내 휴대폰의 배경화면으로 설정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점점 휴대폰은 더 이상 메시지를 주고받는 용도가 아닌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가고 있었다.
나의 분신인 듯 잠시라도 휴대폰이 없으면 초조하고 불안함이 밀려오는 증상은
요즘의 스마트폰 중독과 하나 다를 것이 없다.
그 무렵 삐삐는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갔다.
한 동안 중년 아저씨들의 허리춤에서 다양한 열쇠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간간히 생존신고를 알려왔었다.
요즘은 간혹 당근마켓이나 동묘시장에 가면 그 유물의 존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삐삐가 사라짐으로써 공중전화를 찾아가며 느꼈던 두근거리는 기대감과 긴장감과 설레임들은
휴대폰의 부재중전화에 고스란히 그 느낌이 녹아들었다.
당시에는 발신번호표시 기술이 없었다.
내가 모르는 번호가 부재중으로 남겨져 있으면 발신인이 누군지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온갖 상상을 다했다.
더 이상 공중전화를 찾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준비된 동전을 다 쓰고 마지막 동전만이 남았을 때 곧 끊어질 전화를 아쉬워하는
그 애틋하고 아련한 마음만큼은 휴대전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아쉬움에 끊지 못한 전화통화에 밤을 새운 탓에
다음날 눈알 빠질 듯했던 불면의 고통만이 추억으로 남았을 뿐.
